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다비노드 팔 (문단 편집) == 기타 == 라다비노드 팔 판사마저 "살면서 이런 또라이들은 처음 본다."며 경악해 하면서 "아무리 지금 만든 법으로 이전에 저지른 전쟁범죄를 처벌하는 것은 단순한 보복행위일지라도 이 미친놈들은 아니다."라고 사형 판결을 내리게 만든 작자들이 있었으니 [[다치바나 요시오]], [[치치지마 식인 사건]] 참조. 하지만 이 재판이 정말 팔 판사의 재판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애초에 다치바나 요시오는 극동군사재판이 아닌 별건의 재판이었고, 다른 전범들이 법정에서 온갖 망언을 해도 무죄를 때린 그가 식인 하나로 유죄를 때릴 인간일 가능성은 그렇게까지 높지 않다. 그냥 다치바나의 악랄함을 강조하기 위해 팔 판사를 끌어들인 낭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마저도 무죄를 때릴 경우 미국의 분노가 엄청났을 테니... 이 재판에 진짜 팔 판사가 참가했다면 참으로 아스트랄한 게 저렇게 '팔 판사조차 경악했다는' [[식인종]] 다치바나 요시오는 그나마 일반인에게는 까이는데 문제는 극우들에게는 [[개소리|순국선열로 여겨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 악명높은 [[야스쿠니 신사]]에도 모셔져 있다.]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일본의 전쟁범죄 항목 등에서 승전국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라다비노드 팔이 승자의 보복 운운하며 일본 전범들을 두둔했지만 그 자신도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난했다던가, 일본 극우들이 인도까지 가서 라다비노드 팔을 칭찬하며 감사를 표하자 팔의 가족들이 일본 극우들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등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식의 의심스러운 서술이 적혀 있었다. 팔의 가족들이 일본에 항의한 적은 전혀 없으며 그의 아들인 프라샨토 팔은 [[아베 신조]]와의 면담 당시 '''“아버지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니 자랑스럽다. 아버지의 공적은 당연한 것이었고 정당했다.”''', ''''“어떻게 전쟁 범죄에서 한쪽만을 비난하고 다른 편은 옹호할 수 있겠는가.”'''[[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81&aid=0000146523|라는 망언을 하며 자랑스러워 했다]]. 다만 후에 일본에서 [[군국주의]]에 경도되지 않은 사학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버지 라다비노드 팔은 당시 비폭력주의를 주장하는 간디주의와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에 부정적이고, [[독재자]] 한 명이나 소수의 엘리트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는 [[파시즘]], [[나치즘]], 일본 제국주의 같이 [[전체주의]] 국가관을 지지하는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말년에 일본에서 훈장도 수여받고 환호를 받았으나, 천벌을 받았는지 세금체납으로 인하여 집을 잃고 곤궁하게 살다가 1967년 1월에 사망하였다. [[분류:서벵골 주 출신 인물]][[분류:1886년 출생]][[분류:1967년 사망]][[분류:인도의 법조인]][[분류:캘커타 대학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